코드 깎는 노인
벌써 사 일전 일이다. 공대서 밤새다 가는길에 마스터이로 캐리나 해볼까 하고 PC방을 갔다.
피씨방 한 구석에서 비쥬얼 스튜디오를 들여다 보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진행하던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 버그나 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깟 MFC 하나 가지고 값을 깎으려오? 비싸거든 딴데 하청주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빨리 신택스 오류나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디버거를 돌리는가 했더니, 저물도록 테이블을 만들었다가 드랍했다가 이리 저리 부질없는 쿼리나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짜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과제 제출 시간이 다 되었으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제출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짜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슨 기능을 추가한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제출해야 된다니까……."
노인은
"다른 데 하청주시우. 난 코드 지우것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제출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교수님은 광분하셨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짜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코드가 더러워진다니까. 코드란 아름답게 짜야지, 전역 변수 따윌 쓰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숫제 작업하던 비쥬얼 스튜디오랑 MySQL 콘솔을 최소화 시킨 후 태연스럽게 랭크게임에서 정글 마스터이로 똥을 싸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짜기 시작한다. 얼마 후에 다시 비쥬얼 스튜디오을 켜고 F7누르고 컨트롤 F5 누르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프로젝트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클라이언트 본위(本位)가 아니고 개발자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도서관 추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공대생 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잠을 못자 거무죽죽한 눈매와 찌든 담배냄새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이 공대생에 대한 측은함으로 바뀐 것이었다.
다음날 다시 공대로 가서 코드를 발표 했더니, 교수님은 코드가 예쁘고 자료구조가 아름답게 잘 되었으며 우아한 Entity-Contoller-IOHandler패턴이 적용되었다고 야단이다. 작년 애들이 짰던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대학원 형들의 설명을 들어 보니, 코드가 깔끔하면 퍼포먼스가 떨어져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며, 퍼포먼스가 잘 나오면 으레 코드가 더럽거나 심지어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조차 없는 볼드모트같은 존재인 goto까지는 쓰는 판국인데, 이처럼 딱 맞는 코드는 잘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 출처 미상 : 페친 누군가가 올렸길래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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